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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공간, 사람/주거와 불균형

공급률 100%라는 착시: 수도권 사람들이 여전히 ‘집이 없다’고 느끼는 이유

by 집을 묻는 사람 2025. 8. 7.

“뉴스는 말한다. 집은 충분하다고.
그런데 왜 우리는, 아직도 집이 없다고 느낄까.”

 

어느 날 갑자기, 정부는 대출규제를 꺼내 들었다.
6월 27일 발표된 대책은 주택담보대출 총액을 줄이고, 다주택자들의 대출길을 차단하며
“더는 쉽게 집을 사지 말라”고 말했다.

효과는 곧장 나타났다.
서울의 아파트값 상승폭이 줄어들고, 거래량은 뚝 끊겼다.
‘효과가 있다’며 대통령도 치켜세운 대책이었다.

하지만 고요는 오래가지 않았다.
불과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서울의 아파트값은 다시 꿈틀대기 시작했다.
8월 첫째 주, 상승률 0.14%.
잠시 움츠렸던 불안이 다시 기지개를 켜는 수치였다.

무엇이 이 반등을 만든 걸까?
무엇이 사람들을 다시 집으로, 그리고 대출로 향하게 한 걸까?

통계의 착시: ‘있는 집’과 ‘살 수 있는 집’은 다르다

공급률은 100%를 넘었다.
국토부와 통계청은 입을 모은다.
2024년 현재 전국 주택보급률은 103.4%.
숫자만 보면 이미 모든 가구에 집이 한 채씩 돌아가고, 조금은 남는 상황이다.

하지만 서울은 다르다.
수도권의 평균은 99.3%, 서울은 93.6%다.
더구나 그 수치도 4년 연속으로 떨어지고 있다.
누군가는 집을 더 사고 있고, 누군가는 아직도 월세방을 전전하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안다.
“전국 평균”이라는 단어가 이 도시에 사는 사람에게 아무 위로도 되지 않는다는 걸.

'살 집'이 없는 도시

그렇다면 왜 이렇게 많은 집이 있는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불안할까?

그건 우리가 생각하는 ‘집’과, 통계가 말하는 ‘집’이 다르기 때문이다.

서울의 주택 재고를 들여다보자.

유형 비중 특징

유형 비중 특징
아파트 59.8% 신축 비중 20% 미만, 30년 이상 노후 아파트 다수
빌라·다세대·연립 30.1% 전세사기 후폭풍 이후 신규 준공 급감, 시장 냉각
반지하 약 2.7% 26만 호 이상, 97%가 수도권에 집중
비주거 건물 내 주택 약 1% 상가·공장 개조 주택, 안전 사각지대

통계는 이 모든 것을 ‘집’이라 부른다.
그러나 시장은 다르다.
사람들은 신축 아파트, 역세권, 관리가 쉬운 단지를 찾는다.
그리고 그런 집은, 이 도시엔 턱없이 부족하다.

빌라는 불안하고, 반지하는 습하고, 비주거 개조 주택은 위험하다.
그렇기에 살 만한 집은 희소하고, 값은 오르고, 불안은 커진다.

'입주 절벽'이라는 이름의 미래

게다가 지금 이 순간, 우리는 또 하나의 문제를 통과 중이다.
“입주 절벽”.

올해 상반기 착공률은 전국 –18.9%, 수도권 –8.1%.
분양은 39.6% 감소했다.
공사는 줄었고, 시작된 건도 속도가 더디다.

우리가 체감하게 될 것은 지금이 아니다.
3년 뒤, 2027년 즈음이면 집이 진짜 줄어든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 예고된 미래를 알기에, 사람들은 지금 움직인다.

“지금이라도 사두자.”
“언젠간 또 오른다.”
그런 심리가 다시 매수세를 부르고, 가격을 끌어올린다.

이것이 지금의 반등을 만든 진짜 이유다.

단기 대책이 가릴 수 없는 것들

정부는 규제를 단호하게 꺼낸다.
하지만 시장은 이미 그것이 오래가지 않을 거라 예상한다.
“과거에도 그랬으니까.”

6·27 대책이 나온 직후, 전문가들은
“이 효과는 3~6개월이면 끝날 것”이라 경고했다.
현실은 더 빨랐다. 한 달 만에 끝났다.

그건 대책이 나빠서가 아니다.
문제는 뿌리가 너무 깊어서, 표면만 다듬는 처방으론 도저히 닿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제 안다.
정책은 바뀌고, 규제는 완화되고, 다시 매수 신호가 돌아온다는 것을.
그래서 기대가 아니라 불안으로 움직인다.

우리가 진짜 공급해야 할 것들

그렇다면 이제는 다른 질문을 해야 한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공급하고 있는가?”

  • 입주 시점을 정확히 보여주는 주택 공급
    (단순 계획이 아닌, 공사 중·완공 임박한 공급 파이프라인의 공개)
  • ‘살 수 있는 집’의 품질 보증
    (공공임대·빌라·다세대에도 품질 인증, 관리 체계 도입)
  • 수도권 맞춤형 공급 모델
    (도심 속 저층부지 활용, 소형 아파트 특화 공급 확대)
  • 예측 가능한 정책 시계표
    (갑작스러운 규제 완화·강화가 아닌, 로드맵 중심의 규칙 운영)

우리는 “몇 채를 지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살 수 있었는가”를 묻는 시대로 넘어가야 한다.

마치며:

공급률 100%라는 숫자 뒤에,
사람들이 느끼는 0%의 안정감이 있다.

우리는 지금,
집이 없는 시대를 사는 것이 아니라
집이 있지만 불안한 시대를 살고 있다.

이 시대의 정책이, 공급이, 계획이
그 불안을 해소해 줄 수 있을까?

숫자가 아닌 삶을 위한 공급.
이제는 그것을 고민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