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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짓는다는 것/시작하며

설계는 집을 그리는 일이 아니라, 계획을 확정하는 단계다

by 집을 묻는 사람 2026. 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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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짓기를 준비하는 사람에게
설계는 종종 이렇게 인식된다.

“이제 집 모양을 정하는 단계”
“도면을 그려보는 과정”

하지만 실제 집짓기에서
설계의 역할은 훨씬 무겁다.
설계는 집을 상상하는 단계가 아니라,
앞으로의 선택과 책임을 확정하는 단계에 가깝다.


설계는 구체적이어야 한다

 

설계는 추상적인 아이디어를
구체적인 결정으로 바꾸는 과정이다.

  • 이 집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 하루의 동선은 어떻게 흘러갈지
  • 무엇이 자주 쓰이고, 무엇이 거의 쓰이지 않을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도면 위에 담기지 않으면,
설계는 보기 좋은 그림에 머문다.

특히 설계 단계에서는
가구의 위치가 함께 고민되어야 한다.
침대, 식탁, 수납장의 위치가 정해지면
그에 따라 전기, 급배수, 환기 설비의 위치도
함께 결정된다.

이 순서가 뒤바뀌면
설계 단계에서 정리되지 않은 문제가
시공 단계에서 비용과 변경으로 나타난다.


인허가만을 위한 도면으로는 집을 지을 수 없다

 
 

현장에서 자주 마주치는 문제 중 하나는
인허가를 위한 최소한의 도면만으로
공사가 시작되는 경우
다.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도면은
집을 ‘짓기 위한 도면’으로는 부족하다.

도면이 구체적이지 않으면
시공 과정에서 판단은 현장에 맡겨지고,
그 판단은 사람마다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 결과는
잦은 변경, 공사비 증액,
책임 소재의 불분명함으로 이어진다.

설계 단계에서
충분한 시간과 비용을 들여
상세한 도면을 준비해야 하는 이유
집을 복잡하게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시공 과정의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서다.


설계비는 아끼는 비용이 아니라, 지켜주는 비용이다

 

설계를 진행하다 보면
“설계비를 줄일 수는 없을까요?”라는 질문을
자주 듣게 된다.

하지만 설계비는
집짓기에서 가장 먼저 줄여야 할 비용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합리적으로 지불해야 할 비용에 가깝다.

설계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부족함은
시공 중 변경과 추가 공사비로 되돌아온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시공 중 발생하는 변경 사항이
준공도면에 반영될 수 있도록
설계용역의 과업 범위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
이다.

준공도면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이 집의 현재 상태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다.
이 과정이 빠지면
유지관리와 이후의 판단이 모두 어려워진다.


현장을 함께 보는 건축사를 만나야 한다

 

설계는 도면으로 끝나지 않는다.
좋은 건축사들은
현장에 나와 도면대로 시공되고 있는지를 확인하고,
문제가 생기면 그 자리에서 조율한다.

이 과정이 있을 때
설계는 비로소 살아 있는 기준이 된다.

건축주 입장에서
현장을 함께 보는 건축사를 만난다는 것은
디자인 이상의 가치를 얻는 일이다.
이 차이는
공사가 진행될수록 분명해진다.


멋진 디자인은 공짜가 아니다

 

건축주는 누구나
멋진 디자인의 집을 원할 수 있다.
그 자체는 자연스러운 기대다.

하지만 디자인은
곧바로 공사비와 연결된다.

복잡한 형태, 많은 아이디어,
특이한 디테일은
시공 난이도를 높이고
그만큼 비용과 리스크를 함께 키운다.

앞서 이야기한
평단가가 적용되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서 다시 나타난다.
설계가 복잡해질수록
단순한 ‘평당 얼마’라는 기준은
의미를 잃게 된다.


시공성을 고려하지 않은 설계는 좋은 설계가 아니다

 

현장에서 자주 마주치는 도면 중에는
아이디어는 많지만
시공을 거의 고려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시공 디테일이 복잡할수록
하자 발생 가능성은 높아지고,
그 모든 것은 결국 비용으로 돌아온다.

그래서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시공성을 반영하지 못한 설계 도면은
좋은 도면이 아니다.

설계는
멋있어 보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구현될 수 있어야 의미가 있다.


설계는 지금만이 아니라, 이후까지 책임지는 일이다

 

설계는
완공 순간만을 위한 작업이 아니다.

이 집에서
어떻게 살아가게 될지,
어떻게 관리하게 될지,
그리고 언젠가
처분해야 할 상황이 온다면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집인지까지
함께 고민되어야 한다.

지나치게 독특한 집은
경우에 따라
매각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
이 점 역시
설계 단계에서 충분히 인식되어야 할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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