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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공간, 사람/집이란

집이란

by 집을 묻는 사람 2025. 7. 11.

많은 사람들이 집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청년들은 집값 때문에 결혼을 포기하고,
“영혼까지 끌어모아 건물주가 되겠다”는 절박함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저에게는 조금 다른 기억이 있습니다.
어릴 적 단칸방에서 살았지만, 그것이 내게 큰 고통은 아니었습니다.
물리적으로 불편할지언정, 그 시절 나는 그것을 큰 결핍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느꼈던 게 있었습니다.
집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과 나의 위치를 자각하게 하는 곳이라는 점이었습니다.

건축을 공부하면서 언젠가부터
‘인간을 위한 건축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이 마음속에 자리 잡았습니다.
내가 가진 기술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던 끝에
건축을 통한 봉사라는 길을 선택했고, 그 길에서 몽골에 가게 되었습니다.

몽골에서의 겨울은 내게 강한 충격이었습니다.
임지 실사 때 동료의 몽골 게르에서 잠을 자며,
밤새 꺼지지 않게 소똥을 불에 넣고 또 넣으며 버텨야 했습니다.
너무 추워서 잠들 수도, 깨어있을 수도 없었습니다.
막상 현장으로 들어가려 할 땐, 집을 구하지 못해 수도에서 대기해야 했고,
한겨울 난방 공급이 끊기면 사람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한국에 돌아와 취업 준비를 하며 서울로 올라왔을 때,
나 역시 갈 곳이 마땅치 않았습니다.
지인의 도움 덕분에 준비 기간 동안 머물 곳을 구할 수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운이었고,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건 아니란 걸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그때부터 서서히, ‘나만의 집’이 아니라 ‘모두의 집’,
주거 복지라는 문제에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비영리 활동가로 뛰어든 건 아니었지만,
그 마음의 씨앗은 분명 그때부터 자라고 있었습니다.

 

집은 나를 보호하는 쉘터입니다.
내가 상처받고 돌아와 쉴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집은 나의 내면을 성장시키는 곳,
내가 누구로 살아갈지를 결정짓는 무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부턴가 집을 그릇이 아니라 목적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어떤 고급 그릇인지, 어떤 브랜드인지, 얼마나 크고 비싼지.
하지만 아무리 좋은 그릇이라도
그 안에 상처와 고립과 불행이 담겨 있다면,
그건 그저 좋은 요강일 뿐입니다.

좋은 집이란, 좋은 삶을 담아내는 집입니다.

나는 바랍니다.
사람들이 더 이상 잘못된 논리에 가스라이팅당하지 않기를.
집은 도구입니다.
그리고 집은 우리 모두가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입니다.
그 권리는 외형에 있지 않고, 내면에 있습니다.

집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
그곳에 무엇을 담아내고 싶은가?”

그 질문에서부터, 집의 본질을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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